페루 - 지진
지진은 한국에서 좀처럼 겪어볼 수 없는 일이지요. 페루는 불의고리를 끼고 있는 만큼 수시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ㅎㅎ
Lima 에서 역사적으로 큰 규모 7~8정도의 지진은 1655, 1746, 1940, 1966, 1974, 2007 년에 있었어요.
그중 2007년에 있었던 지진은 규모 8.0의 대지진 이었다고 합니다.
페루 친구들은 2007 년 이후로 큰 지진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곧 큰 게 온다며 매년 봄 가을이되면 겁을 주고,
몇몇 한인 분들이 지진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귀국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ㅋ
이곳이 지진이 많은 곳이어서 인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어요.
1. AFORO ( 정원, 수용인원 ) 표기
MINSA(페루보건부) 는 법으로 상업시설, 문화시설, 교통시설, 공공행사구역 등에 Aforo 를 적어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최대 그만큼의 사람만이 해당 공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안전, 공공질서 유지, 보건 및 위생관리 목적 이라고 하는데, 지진 같은 "비상 상황" 에 원할히 대피 하기 위한 부분도 있습니다.
분명히 은행이나 관공서 안쪽에 그닥 사람이 붐비지 않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밖에 줄을 서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Aforo 때문인 것이지요~ Aforo 가 적혀 있다면, 이를 통제하는 분도 한분씩 밖에 서계세요.
2. 길거리에 있는 Zona Segura(안전지대) 표시
길바닥에 커다란 동그라미 안에 S 라고 적은 곳들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안전지대" 입니다. 지진 발생 시 건물 붕괴나 낙하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지진 또는 다른 재난 발생 시에도 이곳으로 이동합니다. 일종의 "안전한 만남의 장소" 같은 개념인것 같아요. 지진 대피 훈련시에 이 동그라미를 기준으로 방위를 잡고, 9층 인원은 오른쪽에서 만나요~, 10층 인원은 왼쪽에서 만나요~ 같은 계획들을 만들거든요.
3. 건물안의 Zona Segura(안전지대) 표시
건물 안에도 A4 정도의 빗금친 S 표시가 붙은 곳들이 있는데, 이곳도 "안전지대" 입니다. 건물 내 안전지대에는 두가지 역할이 있는데, 첫째는 당연히 "안전" 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인원 구조시 그곳에 집중하여 구조 시기를 당기는데 있다고 합니다. 안전지대는 주로 건물 기둥이나 벽중에 튼튼한 부분, 아치형 구조물 아래, 건물에서 부수거나 개조가 허락되지 않는 곳, 또는 엘레베이터 근처(타는건 안되지만)에 위치합니다. 안전지대 근처에는 사물을 쌓아두거나 가구를 놓지 않습니다.
4. 높은 가구를 고정해요
가구를 사보면, 높이가 있는 가구들은 벽에 고정하기 위한 자재를 함께 제공합니다. 가구 조립을 끝냈는데, 뭔가 부품이 남아있어서 처음에는 무척 놀랐었는데.. 페루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키 큰 가구들이 지진 시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벽에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네요. 사무실에 있는 가구들도 저렇게 다 고정해 두더라고요.
그렇다면 페루에서 지진은 얼마나 자주 겪는 일 일까요?
아래 페루 정부 사이트에서 2025년 1월~3월(현재 3월 24일까지) sismo(지진) 을 검색해 보면, 총 215건의 지진이 보고 되었고, 그중 리마가 37건인데, 주로 지진규모 3~4 사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ultimosismo.igp.gob.pe/ultimo-sismo/sismos-reportados
진도 3~4가 어떤 거지? 싶다면 아래의 "지진 강도별 현상" 을 참조해 주세요~
리마에 사는 입장에서 지진은?
대부분의 지진은 "어? 왜 갑자기 어지럽지?" 라던가, 물컵이나 커피에 파동이 작게 이는 정도라거나, "걸어가고 있어서 몰랐네~" 하는 정도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서너달, 많게는 여섯달에 한번씩은 창이 삐꺽거리거나, 건물이 양옆으로 휘청이는 느낌이 들거나, 침대가 옆으로 움직여 가는 것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주로 대기와 땅의 온도변화가 많은 계절과 시간이 아닐까 의심이 되요.
저희집 아이들은 지진이 오면 제법 공포(지진포비아, Tremofobia)를 느끼더라고요. 심장이 빨리뛰고 숨이차며 힘들어합니다.
그저 조금 놀란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난 2021년 6월 Chila 에서 지진 이 발생했을때 (진도 6.0) 어린 아이가 지진 포비아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례가 뉴스에 보도 된 적이 있었어요.
그! 래! 서! 지진이 느껴질 때는
저는.. 건물안에 아이들과 있을 때 지진이 느껴지면 다음과 같이 행동합니다.
1) 아이들을 먼저 집안의 "Zona Seguro(안전지대)" 에 세웁니다. "곧 지나갈거야. 여기는 안전해" 라고 알려줍니다.
2) 출입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이것은 혹시 모를 유격으로 문이 열리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에요. 크게 흔들리지 않아도 문틀이 휘어서 열기 어려워 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3) 재난가방을 아이들 가까운곳으로 옮기고, 아이들을 꼬옥~ 안아줍니다. 체온으로 서로 위안을 해요.
4) 흔들림이 멈추면, 안전을 확보한 후 외부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해봅니다. 보통 요때.. 통화량이 엄청 증가하기 때문에 연락이 안 닿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서로 안심할 수 있게 메시지를 보내놓는 것도 좋아요.
재난가방은
평소에 주기적으로 내용물을 바꿔가며(식품, 약품에는 유통기한이 있으니까요~) 준비해 주고 출입구 근처나 안전지대에 비치합니다. 내용물은 담요/침낭, 물, 음식(캔에 들어있는 음식, 라면, 유통기한이 긴 식품), 옷, 비상약 (알콜, 붕대, 상처용 연고, 소염진통제 등), 라디오, 손전등, 라이터/성냥, 위생용품 (비누, 칫솔, 휴지, 여성용품 등) 등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진 대피 훈련을 받고 오면, "재난가방" 만들라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하는데, 없는 것 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주나봐요. 그래서 저희집도 만들어 뒀습니다. 식구가 많으니까 재난가방이 빵빵해서, 다음에는 캐리어로 바꿔야 겠습니다.
새벽에 지진이 올때는.. 아이들이 굳이 안깨면 그냥 재워두지만 문은 좀 열어두고... 여진이 지나갔다 싶을때까지 기다렸다 닫습니다. 원래 "지침" 에 따르자면 다들 일어나서 Zona Segura 까지 내려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는 안일한 마음이 있어요. ㅎ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갑자기 생각이 나는 일화가 있네요. 칠레도 불의 고리에 있어 지진이 잦은데요.
칠레에 어떤 사이 좋은 한인 부부가 계셨는데, 무척 사이가 좋아서 많은 분들의 질투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진이 크게 와서 건물이 무척 흔들렸는데,
남편분은 공포심에 홀로 피신(?) 하시고, 아내분이 아이들 둘을 깨워 안고 업고 나오셨다고 해요. 크게 배신감을 느끼셨다고..
웃픈 이야기 였지만, 지진 시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도 정해두었다면 계속 사이 좋은 부부셨지 않을까요? ㅎㅎ
페루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각 가정에서 누가 문을 열어 퇴로를 확보하고, 재난가방을 챙기고, 어떤 가족을 어디서 어떤 순서로 챙길지도 미리 의논해 둔다고 하더라고요. 각자의 안전을 확보한 후 학교나 회사나 시설에서 가족들을 픽업할 순서도 정하고요. 통신 불능 상태를 대비하는 것인가봐요.
학교에서도 학기 초에 "지진 시 누가 아이를 데려갈 지, 혼자 귀가할 수 있는지, 비상시 누구에게 연락하여야 하는지" 를 제출하게 합니다. "응급시를 위한 보험증 번호, 보험사, 주로 가는 병원정보" 도 같이 제출 하는데, 이 정보들을 학교수첩에 적고, 이 수첩을 아이들이 항상 휴대하도록 합니다. 학교수첩은 평소에 알림장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비상시에는 협의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지진 대피 훈련은 학교, 아파트, 상가건물.. 뭐 이곳저곳에서 합니다.
1차 흔들림이 멈췄을 때 대피를 해야, 2차 여진이 오기 전에, 또는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배우지만..
지진이 왔을때는 대부분 조금 흔들리고 마니.. 회사원들은 그냥 앉아서 하던일 들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상사나 고객이 안나가면.. 직업을 걸고 탈출(?)할 정도인지를 고민하며 눈치를 봅니다. ㅋㅋ
저렇게 눈치보고 안전을 확보하지 못할까봐, 조직 별로 안전요원을 정하게 하고, 지진 시에 이분들이 노란모자 쓰고 안장차고 주황색 조끼입고, 비상구까지 사람들을 불러모아 대피시기고 인원 점검을 합니다.
개중에 정말 심하게 공포를 느끼는 분들은 안전요원보다 먼저 "안전지대"에 다달아 있겠지만요. ㅎㅎ
지진이 많은 곳이라서 건물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들지 않았지만,
크게 흔들리고 나서는 한번씩.. 수도가 벽 안에서 파손되어 공사를 하고, 가스관이 비틀어져 건물내 민원이 발생하고 하더라고요.이런걸 볼때는 가끔씩..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됩니다.
이런 저런 얘기로 글이 길~어 졌네요. ㅎㅎ
이상! 여기까지 페루의 지진에 대한 수다 였습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하세요~